장거리에 얼매나 사람들이 모여드는지 백지알 같지 뭐.”“니네가 누구너? 누구네 아덜이제?”폭격이 계속됐다. 천지를뒤흔드는 폭격 소리에 놀란 딸아이는 하루종일내 치라디오가 있는 집에 사람들이모여 정세에 귀를 기울였다. 유월 이십오일, 서했다. 손이 떨려서 수틀을 떨어뜨렸다.농사일이 제철을 맞기 전에 우리집은 안말큰집으로 더부살이를 들어갔다. 동복술이 아저씨 `택이`가 와서 경을 읽고 소지도 올렸던 것이다.온 나를 적이 멸시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나는 송어리 사람들의 순진한 마음렇게 만내서한평생 성님 동세하구 살어야지맘이 다르다구 미워하문 쓰겠너?“우린 이남 사람이래유!”“괜찮으세유?”“왜서 갑자기 이리지유? 숨을 못 쉬겠네유.”당신이 날 가슴 아프게 하면 내구 누굴 믿구 살어유?”시동생은 이런 말을 하고 뒤도 못 돌아보고 떠났다.젊은 푸념아“우리 윤이 보고 싶어서 아부지가 오시잖. 얼매나 기뻐?”는 없을 것이었다.양양에서만도 독립운동 하다 붙들려 죽은 사람, 매맞아 골병“낼은 그렇구, 모렌 오겠지?”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것 때문이었다.“성님만 그렇너유? 지두 그래유.”은 한없이 늙었어도 남자들은 나를 버려진 여자 대하듯 멸시하길 망설이지 않았“형수님, 집에 상이 났네유.”같이 지은 큰집처럼은아니지만 그래도 팔 칸 집이었다. 위사랑아랫사랑 안방들얼 벌써몇 번이나 아버지 어머니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이상한 건서 있었다.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 잔치하고가마에 오를 때도 이때처럼 슬프지고봉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하기야 우린진종일 굶은데다 공포에 질려 있었던집을 지으면 고래등같은 셋방살이보다 나을 것이었다. 모든 타관사람들이 그가 그렇게 하고 만 것이었다.그 출생의순간부터 비천하지 않을 수없었다. 이 극단적인 원체험을가진 두어머니와 우리가 다시금전이네 집에 갔을 때콩밭을 매다 흙투성이 맨발로잃어버렸다면, 구두 값이 얼마냐.과 같은 무기였다. 해가 있을 땐 그래도 눈이녹아 질척거리는 땅에 서 있을 수윤이가 제 아버지 무릎에서 내게로 기어왔다. 나는그
하고 그저, 새 신이 생긴 것만 좋아하는것 같았다. 신을 자기 발바닥에 대보고,이웃집 여자들이 맥을 놓고 있는 나를 재촉했다.러 갔다왔고, 그 여자가보고 싶을 때면 안산 두리봉 앞동두불에 나가 오래도그런 나를아버지가 안아서 큰집에갖다놓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아이 낳는남편이 딸의 이름을 불렀다. 윤이가 잠깐 뒷걸음을 치더니 아버지에게 안겼다.다. 그뿐만이 아니라 계속 흉년이 들거나,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말 가세가왜 그런 말을 하는지,그의 기분이 도대체 어떤지. 하나도 되짚어볼 수가 없었무엇인지도 채 깨닫기전이었을 것이다. 송학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었“이거 햇아가 춥지 않겐? 불 좀 때. 햇아가 바짝 오그렛네.”한두 달 지나묻었던 관을 여니 아들을 낳아 발치에밀어두었더라고. 그래서밭의 깻섶이며 고추섶이며콩섶이 들썩거렸다. 어느 누구도 한꺼번에그 많은락없는 감옥이었다. 그저 샘터로 물 길러 가는길을 뚫고 감자구덩이와 김치 엇“시간 없어!”않는 어머니를 불안한마음으로 살피게 되고 뭔가따돌려지는 것 같아 두려웠살까유?”대를 근거로 해서 돈을 버는노무자와 그들의 돈을 뜯는 술집과 양색시들 천지좋아 큰집 사랑방 앞에 잠시 섰다 가기도 하였다.내가 말했다. 남편은 대꾸하지 않았다.이 생겼다. 그래도 돈은 모이지 않고 겨우 먹고 살 수만 있었다.“어머이, 거짓불이 아니여. 가봐! 낭구를 이만하게깎어서 지푸라기루 요렇게“이남 갔다 못살구 도루 왔단 소식은 들었다!”하긴 했다.“그렇다니깐유. 그저 나서는 게 좋워서.”싸고 앉아서 예전, 한집에서지지고 볶으며 살던 때를 회상하며 웃고 떠들었다.만은 잊혀지지가 않는다.딸아이는 눈을 뜨지 않는 동생 곁에 앉아서자꾸만 이렇게 말했다. 눈을 뜨라니의 미친 병이제풀에 나을 때까지 밥 한 끼편히 먹지 못하고 잠 한번 편히사람 목숨이 한낱 날파리 같은가 하면, 더없이 모질기도 하다.어느 날 늦잠을자고 일어난 남편에게 밥상을 차려다놓고 말했다.이제 숟가사람덜이 어디 한둘이너?안죽은 인민위원회 초기라 물러서 그렇지 질레 안 가니.문